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56

늦더위 지나 환절기, 부모님 세대의 여름 나던 지혜 부채 하나로 여름을 났습니다. 마당에 물을 뿌리고, 등목을 하고, 삼베 홑이불을 덮고 잤습니다. 에어컨은 물론이고 선풍기도 흔치 않던 시절 이야기입니다.그런데 요즘 여름을 겪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때는 정말 견딜 만했던 걸까요, 아니면 우리가 잘 견뎠던 걸까요. 이번에는 기억과 기록을 나란히 놓고 확인해 봤습니다. 답은 둘 다였습니다.그때 여름은 실제로 덜 더웠습니다먼저 이것부터 확인하고 가겠습니다. 기상청이 백십삼 년치 관측 자료를 분석한 보고서에 답이 있습니다.연대열대야 일수폭염 일수1950년대7.9일8.1일1960년대11.1일8.2일1970년대9.3일7.8일1980년대8.9일7.9일1990년대12.8일10.1일2010년대19.7일13.3일2020년대28.0일16.9일인천, 목포, 부산, 서.. 2026. 8. 17.
'바보 의사' 장기려, 가진 것을 다 내어준 외과의사의 일생 1950년 12월, 한 의사가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아내와 여섯 자녀 가운데 아들 하나만 데리고였습니다. 며칠이면 다시 만날 줄 알았습니다.그는 마흔다섯 해를 더 살았고, 끝내 만나지 못했습니다.경성의전 수석 졸업생장기려는 191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났습니다. 한학자 아버지가 세운 학교를 다니고 개성 송도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의학전문학교에 들어갔습니다.1932년,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연도내용1911년평안북도 용천 출생1932년경성의학전문학교 수석 졸업1940년의학박사 학위 취득, 평양 기휼병원 외과과장1947년평양의과대학 외과학 교수1950년 12월차남만 데리고 월남1951년부산 복음병원 설립1968년청십자의료보험조합 창립1979년막사이사이상 수상1995년 12월 25일별세스물일곱 살 무렵 경.. 2026. 8. 16.
광복 그 여름, 우리 부모님이 겪은 '해방 공간'의 진짜 풍경 나라를 되찾았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삼 년이 어땠는지는 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만세를 부르고 나서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고, 거기서부터 살아야 했습니다. 그 살림이 어땠는지를 숫자로 들여다보려 합니다. 지금 예순, 일흔이 되신 분들의 부모님이 지나온 시간입니다.물가가 이백 배가 되었습니다가장 먼저 닥친 것은 물가였습니다.일제는 패망 직전 예금 인출과 일본군 임금, 퇴직금, 귀국비를 대느라 조선은행권을 마구 찍었습니다. 미군정도 재정 적자를 메우려고 계속 찍었습니다.1945년 8월 15일 49억 7,500만 원이던 화폐 발행고가 그해 연말 87억 6,300만 원이 되었습니다. 넉 달 만에 거의 두 배입니다. 1946년과 1947년에도 해마다 거의 두 배씩 늘었습니다.그 결과가 이 표입니다. 1936년을 1.. 2026. 8. 15.
2년 17일이 걸린 회의 —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시작된 정전회담 회의 한 번이 이 년 십칠 일 걸렸습니다.1951년 7월 10일에 시작해 1953년 7월 27일에 끝났습니다. 그런데 그 이 년 동안 전쟁이 멈춰 있던 것이 아닙니다. 회담장에서는 말싸움이, 전선에서는 고지 쟁탈전이 동시에 벌어졌습니다.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짚어 보겠습니다.회담은 어떻게 시작됐나먼저 시작 경위입니다.1951년 6월 23일, 유엔 주재 소련 대표 말리크가 라디오 방송에서 휴전을 제의했습니다. 미국이 이를 받아들였고, 7월 8일 개성에서 연락장교회의로 절차를 정한 뒤 7월 10일 개성 내봉장에서 본회의가 열렸습니다.첫날은 상견례였고, 실제 회담은 7월 11일부터였습니다.구분내용개시1951년 7월 10일, 개성 내봉장대표양측 각 5명유엔군 수석대표조이 해군 .. 2026. 7. 10.
1962년 7월 10일, 하늘에 띄운 은빛 공 하나가 세상을 하나로 묶다 - 텔스타 1호 이야기 바다 건너 소식을 실시간으로 본다는 것. 지금은 당연하지만, 예순여섯 해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1962년 7월 10일, 수박만 한 은빛 공 하나가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대서양 건너로 텔레비전 화면이 처음 건너갔습니다.그전에는 어떻게 연락했나먼저 그 전에는 어땠는지 봐야 이 일의 크기가 보입니다.대륙 사이를 잇는 유일한 수단은 해저 케이블이었습니다. 최초의 대서양 횡단 전화 케이블 TAT-1이 1956년 9월 25일 개통했는데, 규모가 이랬습니다.항목내용개통1956년 9월 25일구간스코틀랜드 ↔ 캐나다 뉴펀들랜드동시 통화 회선36회선 (곧 48회선으로 증설)개통 첫날런던-미국 588통, 런던-캐나다 119통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동시에 서른여섯 통밖에 통화가 안 됐습니다. 유럽 전체와 .. 2026. 7. 10.
1987년 7월 9일, 서울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 — 스물두 살 청년의 마지막 길 1987년 7월 9일, 서울 시내가 사람으로 덮였습니다.스물한 살 대학생의 장례식이었습니다. 그를 보내려고 그날 서울에 백만 명, 광주에 오십만 명이 나왔습니다.그해 6월 9일, 연세대 정문 앞이한열은 1966년 8월 29일 전남 화순에서 태어났습니다.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1986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들어갔습니다.중학교 이 학년 때 오일팔을 목격한 것이 그가 학생운동에 뛰어든 계기였다고 합니다. 만화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던 학생이었습니다.1987년 6월 9일, 이튿날 열릴 국민대회를 앞두고 연세대에서 출정 결의대회가 열렸습니다. 교문 앞 시위 도중 그는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후두부를 맞고 쓰러졌습니다.그리고 스물여섯 날 동안 의식을 찾지 못하다가 7월 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만 스무 살, 대학.. 2026.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