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56 옛날 국민학교, 도시락과 조개탄 난로가 있던 교실 겨울 아침, 교실 한가운데 놓인 난로 위에는 양은 도시락이 층층이 쌓여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아래쪽 도시락은 눌어붙어 노릇한 누룽지가 되고, 위쪽은 아직 찬 기운이 돌았습니다. 서로 자기 도시락을 아래에 놓으려 실랑이하던 그 풍경은, 그 시절 국민학교를 다닌 이라면 누구나 간직한 추억일 것입니다.그런데 그 교실을 오래 들여다보다 보면 추억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반에 예순 명이 앉았고, 교실이 모자라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썼고,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시절 교실을 기억과 함께 기록으로도 한 번 들여다보려 합니다.'국민학교'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먼저 이름부터입니다. 우리가 다니던 학교의 이름이 왜 국민학교였는지, 저는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이 이름은 1941.. 2026. 8. 23. 이태석 신부, 톤즈의 등불 — 총 대신 악기를 들려준 사람 아프리카의 외딴 마을에서 아이들이 부는 트럼펫과 클라리넷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오랜 내전으로 총소리에 익숙하던 아이들이었습니다. 그 손에 총 대신 악기를 쥐여 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의사이자 사제였던 이태석입니다.이 이야기는 워낙 널리 알려져 있어 저도 대충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하나씩 확인해 보니 제가 모르던 숫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숫자들과 함께 이 사람의 일생을 따라가 보려 합니다.부산 남부민동에서 아프리카까지이태석은 1962년 10월 17일 부산 서구 남부민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십 남매 가운데 아홉째였고, 초등학교 이 학년이던 1970년에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어머니 혼자 열 아이를 건사한 집이었습니다.가난한 집 아들이 택한 길은 의대였습니다. 1981년 경남고를.. 2026. 8. 22. 1945년 8월, 전쟁이 끝난 날 — 그해 여름의 두 얼굴 1945년 여름, 세계 곳곳에서 공습을 알리던 사이렌이 멈췄습니다. 같은 여름, 이 땅에서는 삼십육 년 만에 나라를 되찾았습니다. 한쪽에서는 전쟁이 끝났고 다른 한쪽에서는 나라가 돌아왔습니다. 그해 팔월은 그렇게 두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그런데 그 팔월이 정확히 어떤 날들이었는지, 저는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날짜를 하나씩 짚어 보니 생각과 다른 대목이 여럿 있었습니다.1945년 8월, 열흘 사이에 일어난 일먼저 그해 팔월의 연표입니다. 열흘 남짓한 사이에 세계가 뒤집혔습니다.날짜일8월 6일 오전 8시 15분히로시마에 우라늄 폭탄 투하8월 8일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8월 9일 오전 11시 2분나가사키에 플루토늄 폭탄 투하8월 9일소련군 만주 침공 개시8월 14일일본, 포츠담 선언 수락 결정... 2026. 8. 21. 구로공단의 여공들, 산업화의 그늘과 빛 열여섯, 열일곱 살 소녀들이 보따리 하나 들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구로동 공장에서 미싱을 밟고, 저녁이면 야간학교에 가고, 월급봉투는 뜯지도 않은 채 고향으로 부쳤습니다. 그 시절을 산업역군이라 불렀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그냥 '공순이'라고 불렸습니다.이 이야기를 하려면 감정보다 숫자가 먼저 필요합니다. 그 숫자들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구로공단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시작은 법이었습니다. 1964년 9월 14일 수출산업공업단지개발조성법이 만들어졌고, 이듬해부터 구로동 일대에 공단이 들어섰습니다.단지착공준공위치제1단지1965년 3월1967년 4월서울 구로동제2단지1967년 10월1968년 6월가리봉동제3단지1970년1973년가리봉동, 광명 철산동1967년 말 이곳에서 일하던 사람은 2.. 2026. 8. 20. 유일한과 유한양행, 전 재산을 사회에 남긴 기업가의 유언 1971년 4월, 한 기업인의 유언장이 공개되었습니다. 그 안에는 아들에게 남긴 문장이 한 줄 있었습니다.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라는 말이었습니다. 회사 주식은 전부 사회에 내놓았습니다.유일한 박사 이야기입니다. 워낙 유명한 일화라 많이들 알고 계실 텐데, 이번에 자료를 확인해 보니 인터넷에 도는 이야기와 실제 기록이 조금씩 다른 대목이 있었습니다. 원문에 가깝게 정리해 보겠습니다.아홉 살에 혼자 태평양을 건넜습니다유일한은 1895년 1월 15일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구 남매 중 맏아들이었습니다.그가 미국으로 간 것은 1904년, 아홉 살 때입니다. 대한제국 순회공사를 따라 태평양을 건넜습니다. 나라가 기울어 가던 때, 아들만이라도 배우게 하려던 아버지의 결정이었습니다. 네브래스.. 2026. 8. 19. 하룻밤 사이 도시를 가른 베를린 장벽, 1961년 그날의 여름 1961년 8월 13일 일요일 아침, 베를린 사람들은 잠에서 깨어 도시 한가운데가 잘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밤사이 도로 포장이 뜯겨 나가고 철조망이 쳐져 있었습니다. 어제까지 걸어서 오가던 길이 하루아침에 국경이 되었습니다.분단을 겪은 우리에게 이 이야기는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정보다 사실을 정확히 짚어 보려 합니다.하룻밤 사이에 세워진 경계명령이 떨어진 것은 1961년 8월 12일 저녁이었습니다. 동베를린 인민경찰 본부에 작전본부가 차려졌고, 그날 밤부터 이튿날 새벽 사이에 봉쇄가 시작되었습니다.동원된 인원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인민경찰과 국경경찰, 전투단 대원 만 명 이상이 도로 포장을 뜯어 바리케이드를 쌓고 콘크리트 말뚝을 박고 철조망을 쳤습니다. 그 뒤로는 국가인민군 칠천 명 이상.. 2026. 8. 18. 이전 1 2 3 4 5 ···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