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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25

딱 100년 전 1926년, 그해에 벌어진 네 가지 일 100년 전이라고 하면 아득한데, 1926년에 일어난 일들을 늘어놓으면 생각보다 익숙합니다.그해 달력날짜일어난 일4월 25일순종 승하6월 10일6·10 만세운동8월 4일윤심덕과 김우진, 현해탄 투신10월나운규 「아리랑」 단성사 개봉넉 달 사이에 이 일들이 다 일어났습니다.순종의 장례가 불씨가 된 만세운동3·1운동이 고종의 장례를 계기로 일어났다면, 6·10 만세운동은 순종의 인산일에 맞춰 일어났습니다. 7년 만이었어요.올해가 100주년이라 기념사업이 여럿 진행 중입니다.기념사업내용기념우표우정사업본부, 48만 장 발행학술행사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의정원홀 국제학술심포지엄(6·10만세운동기념사업회, 광복회)박물관대한민국역사박물관 콜로키움사의 찬미와 현해탄윤심덕은 조선총독부 관비유학생으로 도쿄음악학교를 다닌 성.. 2026. 8. 31.
1956년 8월 30일 평양, 김일성에게 반기를 든 사람들 북한이 지금처럼 된 것이 언제부터인지 짚어 보면 한 날짜가 나옵니다. 70년 전 오늘입니다.스탈린 비판이 불씨가 됐습니다1956년 2월 소련공산당 20차 대회에서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비판합니다. 개인숭배를 문제 삼았어요. 이 소식이 사회주의권 전체를 흔듭니다.북한에도 닿았습니다. 김일성 개인숭배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당 안에서 나오기 시작했어요.그해 8월 30일항목내용날짜1956년 8월 30일자리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3기 2차 전원회의나선 사람최창익, 박창옥, 서휘, 윤공흠, 리필규계파연안파(중국에서 활동), 소련파(소련에서 온 한인)결과실패. 숙청윤공흠이 먼저 발언대에 섰습니다. 개인숭배를 비판하려 했어요. 그런데 회의장이 야유로 뒤덮입니다. 발언은 끊겼고 상황은 그대로 끝났습니다.계파가 무엇이었.. 2026. 8. 30.
8월 29일 경술국치, 나라를 잃은 그날의 기록 조약에 도장이 찍힌 것은 1910년 8월 22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일주일 뒤인 8월 29일이었습니다.왜 일주일을 숨겼을까요. 그 이유에 그날의 성격이 다 들어 있습니다.숨겨 두었던 일주일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일본은 한국민의 반항을 두려워하여 조약체결을 숨긴 채, 사회단체의 집회를 철저히 금지하고 원로대신들을 연금한 뒤인 8월 29일 이를 반포하였다.조인한 날 서울 거리에는 열다섯 간마다 일본 헌병이 서 있었습니다. 통감 데라우치는 부임하자마자 『대한민보』를 발행정지시키고 『대한매일신보』를 판매금지했습니다. 알릴 만한 신문부터 막아 놓은 겁니다.그리고 조약 제8조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본 조약은 공포일로부터 이를 시행한다.그래서 국권을 잃은 날이 .. 2026. 8. 28.
라디오와 흑백텔레비전, 세상이 거실로 들어오던 날 동네에서 텔레비전 있는 집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레슬링 중계가 있는 날이면 그 집 마루에 사람이 가득 찼고, 만화가게는 만화 손님을 내보내고 텔레비전 손님을 받았습니다. 다방은 문 앞에 "오늘 김일 레슬링"이라고 써 붙였습니다.이건 추억담이 아니라 국가기록원에 남아 있는 기록입니다. 오늘은 라디오와 흑백텔레비전이 우리 집 안방으로 들어오던 시절 이야기를 숫자와 함께 해 보려 합니다.국산 라디오 1호, 그리고 석 달치 월급먼저 라디오입니다.국산 라디오 1호는 1959년 11월 15일 금성사가 만든 A-501입니다. 오구 진공관에 오 인치 스피커를 단 물건이었고, 그해 만든 것이 여든일곱 대였습니다.값이 이만 환이었습니다. 그때 금성사 대졸 사원 월급이 육천 환이었으니 석 달치 월급이 넘는 값입니다. 그래도.. 2026. 8. 27.
추석을 앞두고, 1970~80년대 귀성 전쟁의 추억 새벽 네 시부터 서울역 앞에 사람이 모였습니다. 오전 아홉 시에 예매창구가 열리는데, 그 시각 역 광장에는 오천 명이 서 있었고 줄은 용산 쪽으로 이백 미터가 넘게 이어졌습니다.경찰은 새치기를 막으려고 예매객들을 바닥에 앉혀 일어서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장대를 머리 위로 휘두르며 끼어드는 사람을 곤봉으로 쳤습니다.이것은 회고가 아니라 국가기록원이 기록한 1976년 추석의 서울역 풍경입니다.기차표 한 장을 얻으려고그때 서울역 매표창구는 스물네 개였습니다. 스물네 개 창구로 온 나라의 귀성객을 감당해야 했으니 그런 일이 벌어진 겁니다.서울역 근처 여관은 예매 전날 밤 만원이었습니다. 여관값이 아까운 사람은 대합실 바닥에서 밤을 새웠습니다. 그리고 암표상이 극성이었습니다.표를 손에 넣지 못하면 어떻게 했.. 2026. 8. 26.
구로공단의 여공들, 산업화의 그늘과 빛 열여섯, 열일곱 살 소녀들이 보따리 하나 들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구로동 공장에서 미싱을 밟고, 저녁이면 야간학교에 가고, 월급봉투는 뜯지도 않은 채 고향으로 부쳤습니다. 그 시절을 산업역군이라 불렀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그냥 '공순이'라고 불렸습니다.이 이야기를 하려면 감정보다 숫자가 먼저 필요합니다. 그 숫자들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구로공단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시작은 법이었습니다. 1964년 9월 14일 수출산업공업단지개발조성법이 만들어졌고, 이듬해부터 구로동 일대에 공단이 들어섰습니다.단지착공준공위치제1단지1965년 3월1967년 4월서울 구로동제2단지1967년 10월1968년 6월가리봉동제3단지1970년1973년가리봉동, 광명 철산동1967년 말 이곳에서 일하던 사람은 2.. 2026. 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