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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25

광복 그 여름, 우리 부모님이 겪은 '해방 공간'의 진짜 풍경 나라를 되찾았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삼 년이 어땠는지는 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만세를 부르고 나서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고, 거기서부터 살아야 했습니다. 그 살림이 어땠는지를 숫자로 들여다보려 합니다. 지금 예순, 일흔이 되신 분들의 부모님이 지나온 시간입니다.물가가 이백 배가 되었습니다가장 먼저 닥친 것은 물가였습니다.일제는 패망 직전 예금 인출과 일본군 임금, 퇴직금, 귀국비를 대느라 조선은행권을 마구 찍었습니다. 미군정도 재정 적자를 메우려고 계속 찍었습니다.1945년 8월 15일 49억 7,500만 원이던 화폐 발행고가 그해 연말 87억 6,300만 원이 되었습니다. 넉 달 만에 거의 두 배입니다. 1946년과 1947년에도 해마다 거의 두 배씩 늘었습니다.그 결과가 이 표입니다. 1936년을 1.. 2026. 8. 15.
2년 17일이 걸린 회의 —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시작된 정전회담 회의 한 번이 이 년 십칠 일 걸렸습니다.1951년 7월 10일에 시작해 1953년 7월 27일에 끝났습니다. 그런데 그 이 년 동안 전쟁이 멈춰 있던 것이 아닙니다. 회담장에서는 말싸움이, 전선에서는 고지 쟁탈전이 동시에 벌어졌습니다.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짚어 보겠습니다.회담은 어떻게 시작됐나먼저 시작 경위입니다.1951년 6월 23일, 유엔 주재 소련 대표 말리크가 라디오 방송에서 휴전을 제의했습니다. 미국이 이를 받아들였고, 7월 8일 개성에서 연락장교회의로 절차를 정한 뒤 7월 10일 개성 내봉장에서 본회의가 열렸습니다.첫날은 상견례였고, 실제 회담은 7월 11일부터였습니다.구분내용개시1951년 7월 10일, 개성 내봉장대표양측 각 5명유엔군 수석대표조이 해군 .. 2026. 7. 10.
1987년 7월 9일, 서울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 — 스물두 살 청년의 마지막 길 1987년 7월 9일, 서울 시내가 사람으로 덮였습니다.스물한 살 대학생의 장례식이었습니다. 그를 보내려고 그날 서울에 백만 명, 광주에 오십만 명이 나왔습니다.그해 6월 9일, 연세대 정문 앞이한열은 1966년 8월 29일 전남 화순에서 태어났습니다.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1986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들어갔습니다.중학교 이 학년 때 오일팔을 목격한 것이 그가 학생운동에 뛰어든 계기였다고 합니다. 만화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던 학생이었습니다.1987년 6월 9일, 이튿날 열릴 국민대회를 앞두고 연세대에서 출정 결의대회가 열렸습니다. 교문 앞 시위 도중 그는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후두부를 맞고 쓰러졌습니다.그리고 스물여섯 날 동안 의식을 찾지 못하다가 7월 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만 스무 살, 대학.. 2026. 7. 10.
"피, 오, 엥, 챙!" 온 국민이 밤을 새운 그날,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이야기 (2011년 7월 6일) 2011년 7월 7일 새벽 열두 시 십팔 분. 자정이 막 넘은 시각이었습니다.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 봉투를 열고 도시 이름을 읽었습니다. 평창.세 번째 도전이었습니다.두 번의 석패먼저 앞의 두 번을 봐야 그날의 의미가 보입니다.대회총회1차 투표결선결과2010년2003년 체코 프라하평창 51 / 밴쿠버 40 / 잘츠부르크 16밴쿠버 56 : 평창 533표 차 패2014년2007년 과테말라시티평창 36 / 소치 34 / 잘츠부르크 25소치 51 : 평창 474표 차 패두 번 다 1차 투표에서는 평창이 1위였습니다. 그런데 결선에 가면 탈락한 도시의 표가 유럽 후보로 몰려 뒤집혔습니다. 2003년에는 세 표 차, 2007년에는 네 표 차였습니다.세 표 차로 진다는 것이 어.. 2026. 7. 6.
76년 전 오늘, 죽미령 언덕에서 있었던 일 - 스미스 특임부대 이야기 1950년 7월 5일 아침, 오산 북쪽 죽미령 고개에서 미군 사백여 명이 북한군 전차를 막아섰습니다.여섯 시간 십오 분을 버텼습니다. 그리고 절반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일본에서 나흘 만에 온 부대이 부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부터 봐야 합니다.일시일1950년 6월 30일 밤 10시 45분일본 주둔 미 24사단에 출동 경보7월 1일일본 이타즈케 공항에서 공수, 부산 도착7월 2일대전7월 4일죽미령 진지 점령7월 5일전투경보에서 전투까지 닷새였습니다. 지휘관 이름을 따서 스미스 특임부대라 불렀습니다.병력은 이랬습니다.구성규모보병406명 (2개 소총중대)포병105밀리 곡사포 6문총계약 540명상대는 전차 서른세 대이들이 맞선 상대는 북한군 정예 제4사단과 제107전차연대였습니다.전차 서른세 대, 보병 약 사천 .. 2026. 7. 5.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그날의 목소리, 7·4 남북공동성명 이야기 오늘은 7월 4일입니다. 미국에서는 독립기념일이라며 온 나라가 폭죽을 터뜨리는 날이지만, 우리에게는 이보다 훨씬 더 가슴이 뭉클해지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1972년 오늘,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된 '7·4 남북공동성명'입니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여러분과 조곤조곤 나눠보려고 합니다.[라디오 앞에 온 가족이 모여 앉던 그날]제가 어릴 적, 저희 집 안방에는 나무로 된 큼직한 라디오가 하나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녁마다 볼륨을 낮게 틀어놓고 뉴스를 듣곤 하셨는데, 그 시절 라디오는 지금의 스마트폰보다 훨씬 더 귀한 물건이었지요. 그런데 1972년 7월 4일, 그날만큼은 온 식구가 라디오 앞에 바짝 모여 앉았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떨렸던 것 같습니다. 남.. 2026. 7.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