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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23

1987년 7월 9일, 서울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 — 스물두 살 청년의 마지막 길 1987년 7월 9일, 서울 시내가 사람으로 덮였습니다.스물한 살 대학생의 장례식이었습니다. 그를 보내려고 그날 서울에 백만 명, 광주에 오십만 명이 나왔습니다.그해 6월 9일, 연세대 정문 앞이한열은 1966년 8월 29일 전남 화순에서 태어났습니다.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1986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들어갔습니다.중학교 이 학년 때 오일팔을 목격한 것이 그가 학생운동에 뛰어든 계기였다고 합니다. 만화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던 학생이었습니다.1987년 6월 9일, 이튿날 열릴 국민대회를 앞두고 연세대에서 출정 결의대회가 열렸습니다. 교문 앞 시위 도중 그는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후두부를 맞고 쓰러졌습니다.그리고 스물여섯 날 동안 의식을 찾지 못하다가 7월 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만 스무 살, 대학.. 2026. 7. 10.
"피, 오, 엥, 챙!" 온 국민이 밤을 새운 그날,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이야기 (2011년 7월 6일) 2011년 7월 7일 새벽 열두 시 십팔 분. 자정이 막 넘은 시각이었습니다.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 봉투를 열고 도시 이름을 읽었습니다. 평창.세 번째 도전이었습니다.두 번의 석패먼저 앞의 두 번을 봐야 그날의 의미가 보입니다.대회총회1차 투표결선결과2010년2003년 체코 프라하평창 51 / 밴쿠버 40 / 잘츠부르크 16밴쿠버 56 : 평창 533표 차 패2014년2007년 과테말라시티평창 36 / 소치 34 / 잘츠부르크 25소치 51 : 평창 474표 차 패두 번 다 1차 투표에서는 평창이 1위였습니다. 그런데 결선에 가면 탈락한 도시의 표가 유럽 후보로 몰려 뒤집혔습니다. 2003년에는 세 표 차, 2007년에는 네 표 차였습니다.세 표 차로 진다는 것이 어.. 2026. 7. 6.
76년 전 오늘, 죽미령 언덕에서 있었던 일 - 스미스 특임부대 이야기 1950년 7월 5일 아침, 오산 북쪽 죽미령 고개에서 미군 사백여 명이 북한군 전차를 막아섰습니다.여섯 시간 십오 분을 버텼습니다. 그리고 절반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일본에서 나흘 만에 온 부대이 부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부터 봐야 합니다.일시일1950년 6월 30일 밤 10시 45분일본 주둔 미 24사단에 출동 경보7월 1일일본 이타즈케 공항에서 공수, 부산 도착7월 2일대전7월 4일죽미령 진지 점령7월 5일전투경보에서 전투까지 닷새였습니다. 지휘관 이름을 따서 스미스 특임부대라 불렀습니다.병력은 이랬습니다.구성규모보병406명 (2개 소총중대)포병105밀리 곡사포 6문총계약 540명상대는 전차 서른세 대이들이 맞선 상대는 북한군 정예 제4사단과 제107전차연대였습니다.전차 서른세 대, 보병 약 사천 .. 2026. 7. 5.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그날의 목소리, 7·4 남북공동성명 이야기 오늘은 7월 4일입니다. 미국에서는 독립기념일이라며 온 나라가 폭죽을 터뜨리는 날이지만, 우리에게는 이보다 훨씬 더 가슴이 뭉클해지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1972년 오늘,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된 '7·4 남북공동성명'입니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여러분과 조곤조곤 나눠보려고 합니다.[라디오 앞에 온 가족이 모여 앉던 그날]제가 어릴 적, 저희 집 안방에는 나무로 된 큼직한 라디오가 하나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녁마다 볼륨을 낮게 틀어놓고 뉴스를 듣곤 하셨는데, 그 시절 라디오는 지금의 스마트폰보다 훨씬 더 귀한 물건이었지요. 그런데 1972년 7월 4일, 그날만큼은 온 식구가 라디오 앞에 바짝 모여 앉았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떨렸던 것 같습니다. 남.. 2026. 7. 4.
2년 5개월 만에 서울과 부산을 하루 생활권으로 — 경부고속도로 이야기 오늘은 며칠 뒤면 돌아오는 7월 7일, 그러니까 경부고속도로가 완전히 개통된 날을 조금 미리 꺼내 봅니다. 요즘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차로 내려가는 게 너무 당연한 일이라, 이 길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상상하기가 오히려 어렵죠. 그런데 이 길이 뚫린 지가 이제 겨우 반백 년 남짓입니다.[서울에서 부산까지, 하루가 꼬박 걸리던 시절]지금은 서울에서 부산이 반나절 거리지만, 1960년대만 해도 두 도시를 오가는 건 하루를 통째로 쓰는 큰일이었어요. 비포장 국도를 덜컹거리며 몇 번을 쉬어 가야 했고, 짐을 실은 트럭은 더 오래 걸렸습니다. 물건이 제때 오가지 못하니 장사도, 공장도 속이 탔죠.저희 어머니가 늘 하시던 이야기가 있어요. 젊은 시절 친정 나들이 한 번 가려면 새벽같이 나서서 온종일 버스에 시달.. 2026. 7. 3.
290명이 탄 비행기가 7분 만에 사라진 날 — 1988년, 여름 바다 위 이야기 매일 아침, 오늘 날짜에 얽힌 옛날 이야기 하나를 꺼내 봅니다. 오늘은 7월 3일, 여름 바다 위에서 벌어진 아주 안타까운 오해에 대한 이야기예요.솔직히 저는 비행기를 별로 안 좋아해요. 우리 막내가 유학 간다고 인천공항에서 손 흔들며 배웅할 때도, 겉으론 웃었지만 속으로는 '저 큰 쇳덩이가 어떻게 하늘에 떠 있지' 하는 오래된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라고요. 그날 밤 집에 와서 습관처럼 비행기 사고 다큐를 틀었는데, 화면에 딱 오늘 이야기할 그 사건이 나오는 거예요. 날짜를 보니 하필 7월 3일. 달력을 보다가 손이 멈췄습니다.[여름 바다 위, 딱 7분 사이에 벌어진 일]1988년 7월 3일 아침, 큰 여객기 한 대가 이란을 떠나 두바이로 향했어요. 이란항공 655편, 타고 있던 사람은 승객과 승무원 .. 2026. 7.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