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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

"피, 오, 엥, 챙!" 온 국민이 밤을 새운 그날,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이야기 (2011년 7월 6일)

by 인생의 쉼표 2026. 7. 6.

2011년 7월 7일 새벽 열두 시 십팔 분. 자정이 막 넘은 시각이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 봉투를 열고 도시 이름을 읽었습니다. 평창.

세 번째 도전이었습니다.

두 번의 석패

먼저 앞의 두 번을 봐야 그날의 의미가 보입니다.

대회총회1차 투표결선결과

2010년 2003년 체코 프라하 평창 51 / 밴쿠버 40 / 잘츠부르크 16 밴쿠버 56 : 평창 53 3표 차 패
2014년 2007년 과테말라시티 평창 36 / 소치 34 / 잘츠부르크 25 소치 51 : 평창 47 4표 차 패

두 번 다 1차 투표에서는 평창이 1위였습니다. 그런데 결선에 가면 탈락한 도시의 표가 유럽 후보로 몰려 뒤집혔습니다. 2003년에는 세 표 차, 2007년에는 네 표 차였습니다.

세 표 차로 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때 밤을 새우고 결과를 들으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2011년 7월 6일, 더반

세 번째는 달랐습니다.

후보 도시득표

평창 63표
뮌헨 (독일) 25표
안시 (프랑스) 7표
총 유효투표 95표

1차 투표에서 바로 과반을 넘겼습니다. 결선이 필요 없었습니다. 앞의 두 번을 무너뜨렸던 그 구조 자체를 없애 버린 겁니다.

63표는 올림픽 개최지 투표 1차 라운드 역대 최다 득표였습니다.

현지 시각으로는 7월 6일 오후 다섯 시 십팔 분이었고, 우리 시각으로는 7월 7일 새벽 열두 시 십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6일로도 7일로도 적힙니다.

여덟 사람이 나섰습니다

최종 프레젠테이션에는 발표자 여덟 명과 공식 대표단 백 명이 더반에 갔습니다. 최종 리허설만 한 시간 사십오 분이었습니다.

발표에 나선 사람들은 이랬습니다. 조양호 유치위원장, 이명박 대통령, 김진선 특임대사, 문대성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김연아, 그리고 한국계 미국 스키선수 토비 도슨. 사회와 첫 발표는 나승연 대변인이 맡았습니다.

김연아는 남아공 현지 신문에 직접 글을 기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날 밤 이 나라는

발표가 자정 직후였으니 온 나라가 밤을 새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날 새벽 생중계 시청률이 얼마였는지, 평창과 강릉 현지에 몇 명이 모였는지를 알려 주는 공식 자료를 저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숫자로는 적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날 대표단이 서로 얼싸안으며 한 말은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의 승리는 국민의 승리라는 말이었습니다. 십이 년, 세 번의 도전 끝이었으니까요.

칠 년 뒤, 실제로 열렸습니다

그리고 2018년 2월 9일 개회식이 열렸습니다.

항목내용

기간 2018년 2월 9일 ~ 25일
참가국 92개국
종목 15개 종목 102개 세부종목 (동계올림픽 첫 금메달 100개 돌파)
선수 2,833명 (국제올림픽위원회 공식 집계)
한국 선수단 122명
첫 참가국 6개국 (나이지리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

한국 성적은 금 5, 은 8, 동 4, 모두 17개로 종합 7위였습니다.

개회식 시청률은 지상파 세 곳을 합쳐 44.6퍼센트(닐슨코리아 기준), 순간 최고 52.5퍼센트였습니다.

돈 이야기도 하나 하겠습니다. 개회식과 폐회식 예산이 668억 원이었는데,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의 십일 퍼센트 수준이었습니다. 2010년 밴쿠버 개회식(1,715억 원)과 2012년 런던 개회식(1,839억 원)의 절반도 안 됐습니다.

한반도기와 단일팀

이 대회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남북 문제입니다.

2018년 1월 9일 판문점 회담에서 북한 참가가 결정됐고, 북한 선수 열 명이 왔습니다.

그리고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만들어졌습니다. 올림픽 아이스하키 사상 최초였습니다.

항목내용

팀명 코리아 (국가코드 COR)
엔트리 35명 (한국 23명 + 북한 12명)
경기 출전 기존대로 22명, 매 경기 북한 선수 최소 3명
성적 전 경기 패, 8개 팀 중 8위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엔트리를 늘려 줘 출전 기회를 잃은 한국 선수는 없었습니다. 단일팀이 넣은 첫 골의 퍽은 국제아이스하키연맹 명예의 전당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개회식에서는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했습니다. 2007년 동계 아시안게임 이후 십일 년 만이었습니다.

여론은 시기에 따라 크게 움직였습니다. 조사기관과 날짜를 함께 적습니다.

시기조사결과

2018년 2월 2일 한국갤럽 한반도기 공동입장 찬성 53% / 반대 39%
2018년 2월 23일 한국갤럽 찬성 68% / 반대 24%
개회식 전 한국갤럽 단일팀 찬성 40% / 반대 50%
2018년 2월 23일 한국갤럽 단일팀 찬성 50% / 반대 36%

대회를 치르면서 여론이 뒤집혔습니다.

그다음 이야기

대회가 끝난 뒤의 일도 사실대로 적겠습니다.

조직위원회 결산은 흑자였습니다. 수입 2억 2,500만 달러, 지출 2억 1,900만 달러로 약 619억 원 흑자였습니다.

다만 이것은 조직위 운영 수지이고, 경기장 사후 운영은 적자 구조입니다. 한국개발연구원 분석으로 세 개 시설의 연간 운영비가 약 103억 원인데 예상 적자가 약 74억 원입니다.

시설연간 예상 적자

올림픽 슬라이딩센터 26억 1,400만 원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 21억 3,200만 원
강릉하키센터 26억 9,600만 원

시설마다 갈 길이 달라졌습니다. 알펜시아 국제방송센터는 국가문헌보존관이 되었고, 정선 알파인 경기장은 산림 복원을 위해 철거됐습니다. 나머지는 예산을 넣어 운영을 재개했습니다.

2019년 3월에는 2018평창기념재단이 만들어졌고, 2020년에는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 유치가 확정되어 시설을 다시 쓰게 됐습니다.

세 번 만에

2003년 프라하에서 세 표 차로 지고, 2007년 과테말라에서 네 표 차로 지고, 2011년 더반에서 예순세 표를 받았습니다.

십이 년입니다. 그 사이에 강원도 사람들은 두 번 밤을 새우고 두 번 울었습니다.

지금 예순, 일흔이 되신 분들 가운데 그 세 번의 밤을 다 지켜보신 분이 계실 겁니다. 2003년에는 사십 대나 오십 대셨을 테고, 2011년에는 오십 대나 육십 대셨겠지요.

세 번째에 되는 일도 있더라는 것. 그것이 이 이야기에서 제일 오래 남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출처 및 참고
· 2011년 7월 6일 더반 제123차 총회 결과(평창 63 / 뮌헨 25 / 안시 7, 총 95표), 2010년·2014년 투표 결과: 국제올림픽위원회 발표 및 개최지 선거 자료
· 최종 프레젠테이션 발표자 8명과 공식 대표단 100명, 리허설 시간, 김연아 현지 신문 기고: 2011년 7월 언론 보도
·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참가국 92개국·종목 102개·선수 2,833명·한국 성적: 국제올림픽위원회 공식 자료
· 개회식 시청률 44.6퍼센트: 닐슨코리아 집계. 개폐회식 예산 668억 원: 개폐회식 총감독 인터뷰
·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과 성적, 한반도기 공동입장: 국제올림픽위원회·국제아이스하키연맹 자료
· 여론조사: 한국갤럽 각 시점 조사
· 조직위 결산 흑자 619억 원: 2018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발표(2018년 10월)
· 경기장 연간 적자: 한국개발연구원 분석 및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자료
· 2018평창기념재단 설립, 시설 사후 활용: 관련 기관 자료
확인하지 못한 것 — 2011년 7월 7일 새벽 생중계의 시청률, 평창·강릉 현지 응원 인파 규모, 유치위원회 전체 조직 규모는 공식 자료를 찾지 못해 수치로 적지 않았습니다. 참가 선수 수는 국제올림픽위원회 공식 2,833명과 엔트리 마감 기준 2,925명으로 갈리는데, 본문에는 공식 집계를 실었습니다. 유치 확정 날짜는 현지 기준 7월 6일, 한국 기준 7월 7일로 자료마다 다르게 표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