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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23

8월 29일 경술국치, 나라를 잃은 그날의 기록 조약에 도장이 찍힌 것은 1910년 8월 22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일주일 뒤인 8월 29일이었습니다.왜 일주일을 숨겼을까요. 그 이유에 그날의 성격이 다 들어 있습니다.숨겨 두었던 일주일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일본은 한국민의 반항을 두려워하여 조약체결을 숨긴 채, 사회단체의 집회를 철저히 금지하고 원로대신들을 연금한 뒤인 8월 29일 이를 반포하였다.조인한 날 서울 거리에는 열다섯 간마다 일본 헌병이 서 있었습니다. 통감 데라우치는 부임하자마자 『대한민보』를 발행정지시키고 『대한매일신보』를 판매금지했습니다. 알릴 만한 신문부터 막아 놓은 겁니다.그리고 조약 제8조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본 조약은 공포일로부터 이를 시행한다.그래서 국권을 잃은 날이 .. 2026. 8. 28.
라디오와 흑백텔레비전, 세상이 거실로 들어오던 날 동네에서 텔레비전 있는 집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레슬링 중계가 있는 날이면 그 집 마루에 사람이 가득 찼고, 만화가게는 만화 손님을 내보내고 텔레비전 손님을 받았습니다. 다방은 문 앞에 "오늘 김일 레슬링"이라고 써 붙였습니다.이건 추억담이 아니라 국가기록원에 남아 있는 기록입니다. 오늘은 라디오와 흑백텔레비전이 우리 집 안방으로 들어오던 시절 이야기를 숫자와 함께 해 보려 합니다.국산 라디오 1호, 그리고 석 달치 월급먼저 라디오입니다.국산 라디오 1호는 1959년 11월 15일 금성사가 만든 A-501입니다. 오구 진공관에 오 인치 스피커를 단 물건이었고, 그해 만든 것이 여든일곱 대였습니다.값이 이만 환이었습니다. 그때 금성사 대졸 사원 월급이 육천 환이었으니 석 달치 월급이 넘는 값입니다. 그래도.. 2026. 8. 27.
추석을 앞두고, 1970~80년대 귀성 전쟁의 추억 새벽 네 시부터 서울역 앞에 사람이 모였습니다. 오전 아홉 시에 예매창구가 열리는데, 그 시각 역 광장에는 오천 명이 서 있었고 줄은 용산 쪽으로 이백 미터가 넘게 이어졌습니다.경찰은 새치기를 막으려고 예매객들을 바닥에 앉혀 일어서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장대를 머리 위로 휘두르며 끼어드는 사람을 곤봉으로 쳤습니다.이것은 회고가 아니라 국가기록원이 기록한 1976년 추석의 서울역 풍경입니다.기차표 한 장을 얻으려고그때 서울역 매표창구는 스물네 개였습니다. 스물네 개 창구로 온 나라의 귀성객을 감당해야 했으니 그런 일이 벌어진 겁니다.서울역 근처 여관은 예매 전날 밤 만원이었습니다. 여관값이 아까운 사람은 대합실 바닥에서 밤을 새웠습니다. 그리고 암표상이 극성이었습니다.표를 손에 넣지 못하면 어떻게 했.. 2026. 8. 26.
구로공단의 여공들, 산업화의 그늘과 빛 열여섯, 열일곱 살 소녀들이 보따리 하나 들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구로동 공장에서 미싱을 밟고, 저녁이면 야간학교에 가고, 월급봉투는 뜯지도 않은 채 고향으로 부쳤습니다. 그 시절을 산업역군이라 불렀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그냥 '공순이'라고 불렸습니다.이 이야기를 하려면 감정보다 숫자가 먼저 필요합니다. 그 숫자들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구로공단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시작은 법이었습니다. 1964년 9월 14일 수출산업공업단지개발조성법이 만들어졌고, 이듬해부터 구로동 일대에 공단이 들어섰습니다.단지착공준공위치제1단지1965년 3월1967년 4월서울 구로동제2단지1967년 10월1968년 6월가리봉동제3단지1970년1973년가리봉동, 광명 철산동1967년 말 이곳에서 일하던 사람은 2.. 2026. 8. 20.
광복 그 여름, 우리 부모님이 겪은 '해방 공간'의 진짜 풍경 나라를 되찾았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삼 년이 어땠는지는 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만세를 부르고 나서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고, 거기서부터 살아야 했습니다. 그 살림이 어땠는지를 숫자로 들여다보려 합니다. 지금 예순, 일흔이 되신 분들의 부모님이 지나온 시간입니다.물가가 이백 배가 되었습니다가장 먼저 닥친 것은 물가였습니다.일제는 패망 직전 예금 인출과 일본군 임금, 퇴직금, 귀국비를 대느라 조선은행권을 마구 찍었습니다. 미군정도 재정 적자를 메우려고 계속 찍었습니다.1945년 8월 15일 49억 7,500만 원이던 화폐 발행고가 그해 연말 87억 6,300만 원이 되었습니다. 넉 달 만에 거의 두 배입니다. 1946년과 1947년에도 해마다 거의 두 배씩 늘었습니다.그 결과가 이 표입니다. 1936년을 1.. 2026. 8. 15.
2년 17일이 걸린 회의 —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시작된 정전회담 회의 한 번이 이 년 십칠 일 걸렸습니다.1951년 7월 10일에 시작해 1953년 7월 27일에 끝났습니다. 그런데 그 이 년 동안 전쟁이 멈춰 있던 것이 아닙니다. 회담장에서는 말싸움이, 전선에서는 고지 쟁탈전이 동시에 벌어졌습니다.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짚어 보겠습니다.회담은 어떻게 시작됐나먼저 시작 경위입니다.1951년 6월 23일, 유엔 주재 소련 대표 말리크가 라디오 방송에서 휴전을 제의했습니다. 미국이 이를 받아들였고, 7월 8일 개성에서 연락장교회의로 절차를 정한 뒤 7월 10일 개성 내봉장에서 본회의가 열렸습니다.첫날은 상견례였고, 실제 회담은 7월 11일부터였습니다.구분내용개시1951년 7월 10일, 개성 내봉장대표양측 각 5명유엔군 수석대표조이 해군 .. 2026.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