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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

290명이 탄 비행기가 7분 만에 사라진 날 — 1988년, 여름 바다 위 이야기

by 인생의 쉼표 2026. 7. 3.

매일 아침, 오늘 날짜에 얽힌 옛날 이야기 하나를 꺼내 봅니다. 오늘은 7월 3일, 여름 바다 위에서 벌어진 아주 안타까운 오해에 대한 이야기예요.

솔직히 저는 비행기를 별로 안 좋아해요. 우리 막내가 유학 간다고 인천공항에서 손 흔들며 배웅할 때도, 겉으론 웃었지만 속으로는 '저 큰 쇳덩이가 어떻게 하늘에 떠 있지' 하는 오래된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라고요. 그날 밤 집에 와서 습관처럼 비행기 사고 다큐를 틀었는데, 화면에 딱 오늘 이야기할 그 사건이 나오는 거예요. 날짜를 보니 하필 7월 3일. 달력을 보다가 손이 멈췄습니다.

[여름 바다 위, 딱 7분 사이에 벌어진 일]

1988년 7월 3일 아침, 큰 여객기 한 대가 이란을 떠나 두바이로 향했어요. 이란항공 655편, 타고 있던 사람은 승객과 승무원 합쳐 290명. 그중 66명이 어린아이였습니다. 비행시간이 30분도 안 되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아주 짧은 노선이었죠.

문제는 그 바다 밑에 전쟁이 흐르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때는 이란과 이라크가 8년째 전쟁을 하던 시기였고, 그 바다에선 서로 배를 공격하는 일이 자주 있었어요. 미국 군함들도 자기편 배를 지킨다는 이유로 그 바다에 나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미국이 한창 자랑하던 최신 군함, '빈센스함'이었습니다.

빈센스함의 레이더가 방금 뜬 655편을 잡아냈어요. 그런데 이걸 '적의 전투기가 우리를 향해 내려오며 공격하려 한다'고 착각했습니다. 여객기는 그냥 정해진 길 따라 평범하게 올라가고 있었는데, 군함 안에서는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던 거죠. 경고를 보냈는데 답이 없다고 판단한 군함은 미사일 두 발을 쐈어요. 미사일은 정확히 맞았고, 탄 사람 290명 모두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행기가 뜨고 나서 이 일이 벌어지기까지, 채 7분이 안 걸렸어요.

[‘오해였다’는 말로는 덮이지 않는 것들]

사고 직후 미국 정부는 '어쩔 수 없는 방어였다'고 설명했어요. 여객기가 군함 쪽으로 공격하듯 내려오고 있었고, 민간 비행기라는 신호도 못 받았다는 거였죠. 당시 레이건 대통령도 안타깝다고는 했지만, 군인들의 판단을 감쌌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설명에 금이 가기 시작했어요. 사건을 조사한 국제기구는 655편이 정상적인 항로에서 평범하게 올라가고 있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미국이 처음에 말한 '내려오며 공격해왔다'는 얘기와 정반대였던 거죠. 게다가 나중에 미국의 한 고위 장성은 방송에 나와서, 사건 당시 빈센스함이 사실은 이란 바다 안쪽에 들어가 있었다고 인정했어요. 지킨다던 쪽이 오히려 남의 바다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은 끝까지 공식적으로 사과하지는 않았어요. 대신 몇 년 뒤, 국제 재판 과정에서 유가족들에게 약 6천만 달러가 넘는 돈을 주기로 하면서 사건을 마무리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와, 돈은 주되 잘못은 콕 집어 말하지 않는 '합의'. 그 미묘한 차이가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느껴졌을지, 저는 그저 조심스럽게 짐작만 해봅니다.

[최신 장비는 왜 여객기를 전투기로 봤을까]

빈센스함은 당시 미국이 제일 자랑하던 군함이었어요. 하늘의 수많은 목표물을 동시에 잡아내서 배 안 곳곳에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최첨단 레이더를 달고 있었죠. 그런데 이 대단한 장비가 어떻게 평범한 여객기를 공격 전투기로 착각했을까요.

조사를 해보니 문제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었어요. 군인들 상당수가 이 최신 장비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했고, 심지어 어떤 담당자는 레이더 화면에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목표물을 표시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급박한 상황에서 정보가 여기저기 잘못 전달됐고, 655편은 분명히 위로 올라가고 있었는데도 지휘부에는 '아래로 내려오며 다가온다'는 정반대 보고가 올라간 거예요.

여기엔 사람 마음의 함정도 있었어요. 극도로 긴장한 상태에서는, 머릿속에 이미 '공격받을지도 몰라' 하는 최악의 그림을 그려놓고, 눈앞의 정보도 자기도 모르게 그 그림에 맞춰서 해석하게 된다고 해요. '공격당하고 있다'는 예상이 먼저 있었고, 레이더에 뜬 신호들이 전부 그 예상을 뒷받침하는 쪽으로 읽힌 셈이죠. 아무리 좋은 장비도, 그걸 다루는 사람의 공포까지 걸러주진 못했던 겁니다.

더 씁쓸한 뒷이야기도 있어요. 사건이 있고 나서 빈센스함 군인들은 전쟁터에서 복무했다는 이유로 표창을 받았고, 함장도 몇 년 뒤 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표창장에는 655편을 격추한 일에 대한 이야기가 단 한 줄도 없었대요. 290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의 책임자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훈장을 받은 이 장면은, 이란은 물론 미국 안에서도 오랫동안 말이 많았습니다.

[왜 지금 이 이야기를 꺼내냐면요]

이게 30년도 더 지난 옛날 일로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있어요. 2020년 1월, 이번엔 반대로 이란군이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미사일로 격추해서 176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미국과 이란 사이가 극도로 험악하던 때, 방어를 맡은 사람이 여객기를 적의 미사일로 착각한 사고였어요. 32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거의 똑같은 구조의 비극이 같은 바다 근처 하늘에서 되풀이된 겁니다.

두 사건이 함께 말해주는 건 분명해요. 서로 잔뜩 날이 서 있는 상황에서는, 레이더 화면의 점 하나가 순식간에 수백 명의 목숨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르는 사람은 대개 전쟁과는 아무 상관 없는 보통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라는 것도요. 655편에서 숨진 아이가 66명이라는 그 숫자가, 저는 오래도록 잊히지가 않더라고요.

[다큐를 끄고 나서]

다큐가 끝나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비행기가 무서워서 튼 영상인데, 정작 마음에 남은 건 비행기가 안전한가 아닌가가 아니라 '판단'이라는 것의 무게였습니다. 몇 초 안에 내려야 하는 결정, 그 결정을 둘러싼 두려움과 불확실함, 그리고 그 결과를 고스란히 떠안는 이름 모를 사람들.

역사를 들여다본다는 건 결국 남의 실수를 구경하는 게 아니라, 똑같은 실수가 반복되는 모양을 알아차리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오늘 7월 3일, 그 여름 바다 위에서 사라진 290명을 잠깐 떠올려 봅니다. 우리가 뉴스 속 숫자로만 흘려보내는 사건 하나하나에도, 공항 게이트 앞에서 손 흔들던 누군가의 가족이 있었을 테니까요.

* 이 글은 인터넷에 공개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제 나름대로 정리하고,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여 쓴 글이에요. 혹시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살짝 알려주세요.

이륙에서 피격까지 7분 43초

시각(이란 표준시) 일어난 일
10:17 반다르아바스 이륙. 예정보다 27분 늦었습니다
이륙 직후 빈센스호 레이더가 포착. 식별감독관이 거리 설정을 되돌리지 않아 지상의 다른 항공기 신호를 잘못 태깅. 일주일 전 이륙한 F-14 코드로 오인합니다
10:24:07 관제탑: "Iran Air 655 roger, contact Tehran Control 133.4, have a nice flight."
10:24:11 여객기 마지막 교신: "Thank you, good day."
10:24:22 빈센스호가 미사일 2발 발사
10:24:43 첫 명중. 기체가 세 동강 나 바다로 떨어집니다

이륙 후 7분 22초 만에 발사, 7분 43초 만에 피격이었습니다. 여객기는 국제 상업항로 앢버 59를 따라 고도 14,000피트로 상승 중이었고 민간용 트랜스폰더 코드 6760을 계속 송신하고 있었습니다.

탄 사람 290명, 살아남은 사람 0명

국적 인원
이란 254
아랍에미리트 13
인도 10
파키스탄 6
유고슬라비아 6
이탈리아 1
합계 290(승객 274, 승무원 16)

어린이는 65명에서 66명 사이입니다. ICAO 보고서 기준으로는 65명입니다. 미군이 경고에 쓴 속도는 대지속도 350노트였고 조종석 계기에 표시되는 지시대기속도는 300노트였습니다. 50노트 차이 때문에 조종사가 자기 얘기가 아니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ICAO 보고서는 적었습니다.

사과하지 않은 채 돈을 냈습니다

시점 미국의 입장
1988년 7월 3일 국방부 초기 발표는 "이란 F-14를 격추했다". 몇 시간 뒤 철회합니다
1988년 7월 5일 레이건 대통령이 유감 표명. 사과로 봐도 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지만 공식 사과는 아니었습니다
1988년 12월 ICAO 보고서가 빈센스호는 이란 영해 깊숙이 있었다고 판정합니다
1992년 7월 1일 합참의장 크로우 제독이 방송에서 영해 침범을 처음 인정합니다
1996년 2월 22일 국제사법재판소 사건이 판결 없이 합의로 종결됩니다
항목 내용
총 지급액 1억 3,180만 달러(다른 청구 포함)
655편 유족분 6,180만 달러
1인당 소득이 있던 희생자 30만 달러, 없던 희생자 15만 달러
법적 성격 호의적 지급. 미국은 책임과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흔히 "미국이 재판에서 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본안 판결을 내린 적이 없습니다. 양측 합의로 사건이 명부에서 지워졌을 뿐입니다.


출처
· 시각 순서, 항로, 트랜스폰더, 속도 차이: 미 국방부 Fogarty 보고서(1988) 및 ICAO 보고서(1988)
· 국적 구성과 배상: 위키피디아 영문판(각주에 ICAO 보고서 및 합의서 인용)
· 소송 종결: 국제사법재판소 명령, 1996 ICJ Rep 9
확인하지 못한 것 — 어린이 수는 65명과 66명으로 자료가 엇갈립니다. 1996년 배상 합의서는 사망한 이란인을 248명으로 적었는데 국적 구성표의 254명과 6명 차이가 납니다. 원인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 홈페이지 원문은 직접 열지 못해 검색 결과 요약으로 확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