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가 무슨 해인지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저도 얼마 전에야 알았습니다.
1876년 8월 29일. 황해도 해주에서 한 아이가 태어납니다. 백범 김구입니다. 올해로 꼭 150년이 됐어요.
유네스코가 정한 기념해
작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유네스코 제43차 총회에서 2026년을 김구 탄생 150주년 기념해로 정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제안했고 여러 나라가 손을 들어 줬어요.
| 항목 | 내용 |
|---|---|
| 지정 시점 | 2025년 유네스코 제43차 총회(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
| 찬성한 나라 | 중국, 태국, 베트남, 카메룬, 나미비아, 말라위, 잠비아, 코트디부아르 |
| 정부 공식 문구 | 나의 소원, 평화의 문화 |
| 기념 행사 | 2026년 9월 17일부터 20일까지 창경궁 문정전 「기억의 예우」 |
아프리카 나라들이 찬성했다는 대목이 눈에 걸립니다. 식민지를 겪은 나라들이 알아본 이름이라는 뜻이겠지요.
현상금 60만 원의 무게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폭탄을 던집니다. 그 배후로 김구가 지목되면서 일본이 현상금을 걸었어요.
60만 원이었습니다.
그 시절 일반 노동자 월급이 30원 남짓이었습니다. 계산해 보면 2만 배입니다. 지금 월급 300만 원으로 환산하면 600억 원쯤 되는 셈이에요. 사람 하나에 걸린 값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액수입니다.
11개 도시를 떠돈 13년
현상금이 걸린 뒤 김구와 임시정부는 도망 다니는 것이 일이 됩니다.
| 시기 | 머문 곳 |
|---|---|
| 1932년 이전 | 상하이 |
| 1932년 이후 | 자싱, 항저우, 전장, 난징, 우한, 창사, 광저우, 류저우, 치장 |
| 1940년 | 충칭 정착 |
열한 개 도시입니다. 짐을 풀었다가 다시 싸기를 열한 번 했다는 뜻이에요. 자싱에서는 뱃사공 처녀 주아이바오의 배에 숨어 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가 마지막에 남긴 문장
1947년에 낸 『백범일지』 끝에 붙인 「나의 소원」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부강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라고 썼어요. 나라 잃은 사람이 쓴 문장 치고는 뜻밖입니다. 힘을 갖자고 할 법한데 그러지 않았거든요.
왜 지금 다시 꺼내는가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안두희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납니다. 일흔셋이었어요.
지금 예순, 일흔이 되신 분들 가운데는 부모님이 백범 이야기를 하시던 것을 들으신 분이 계실 겁니다. 그때는 그 이름이 지금처럼 교과서 속 인물이 아니라 얼마 전에 돌아가신 어른이었을 테고요.
150년이라는 숫자가 멀게 느껴지지만, 따져 보면 우리 할아버지 세대와 겹치는 시간입니다.
스무 살에 사람을 죽였습니다
백범의 젊은 시절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1896년 황해도 치하포 주막에서 일본인 한 명을 죽입니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이듬해였어요. 그 일본인이 조선인 행세를 하고 있었고, 국모의 원수를 갚는다는 생각으로 벌인 일이었습니다.
스무 살이었습니다. 도망가지 않고 자기 이름과 사는 곳을 벽에 써 붙이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얼마 뒤 붙잡혀 인천 감옥에 갇힙니다. 사형이 확정됐는데 집행 직전에 멈췄습니다.
이 대목이 유명합니다. 고종이 전화로 사형 집행을 중지시켰다는 이야기예요. 마침 한성과 인천 사이에 전화가 개통된 직후였다고 전해집니다. 다만 이 일화는 자료마다 서술이 조금씩 달라서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조심해서 봐야 합니다.
이후 탈옥하고, 승려가 되기도 하고, 교육 사업에 뛰어들기도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 이렇게 많은 국면이 들어 있는 경우가 흔치 않아요.
임시정부의 문지기에서 주석까지
1919년 3·1운동 뒤 상하이로 건너갑니다. 마흔셋이었어요.
임시정부에 들어가면서 그가 맡겠다고 한 자리가 문지기였습니다. 청사를 지키고 청소하는 일이라도 시켜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백범일지』에 나옵니다. 실제로는 경무국장을 맡게 됐고요.
| 연도 | 자리 |
|---|---|
| 1919 | 임시정부 경무국장 |
| 1926 | 국무령 |
| 1931 | 한인애국단 조직 |
| 1940 | 임시정부 주석, 한국광복군 창설 |
한인애국단이 이봉창과 윤봉길의 의거를 이끈 조직입니다. 1932년 1월 이봉창이 도쿄에서 천황의 마차에 폭탄을 던졌고, 그해 4월 윤봉길이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던졌어요. 석 달 사이였습니다.
해방 뒤의 3년
1945년 11월 귀국합니다. 그런데 임시정부 주석 자격이 아니라 개인 자격이었어요. 미군정이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7년을 밖에서 싸운 조직이 돌아왔는데 정부로 대접받지 못한 겁니다. 이 대목이 이후 3년을 규정합니다.
1948년 남한만의 단독 선거가 결정되자 그는 반대합니다. 그해 4월 38선을 넘어 평양으로 갑니다. 남북협상이라고 부르는 그 회담이에요. 결과적으로 성과 없이 끝났고, 그를 두고 현실을 모른다는 비판도 컸습니다.
넘어가기 전에 남긴 글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통일된 조국을 세우려다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안일을 위해 단독 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않겠다는 뜻이었어요.
1년 뒤 경교장에서 총에 맞습니다.
백범일지를 읽어 보시겠다면
『백범일지』는 원래 출판을 염두에 둔 책이 아니었습니다. 상권은 1929년, 두 아들에게 남기려고 쓴 글이에요. 언제 죽을지 모르니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려 주려던 것이었습니다.
하권은 1942년 충칭에서 썼고, 해방 뒤 1947년에 합쳐서 출간됐습니다.
문장이 어렵지 않습니다. 한문 투가 좀 있지만 요즘 나온 판본은 현대어로 풀어 놓았어요. 도서관에 가시면 큰 글자 판본도 있습니다.
영웅담이 아니라 실수와 후회가 그대로 적혀 있어서 읽는 맛이 있습니다. 자기가 못난 짓을 한 대목도 숨기지 않았어요.
올해 무엇이 열리나
9월 17일부터 20일까지 창경궁 문정전에서 「기억의 예우」 행사가 열립니다. 서울시가 준비한 것이고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백범김구기념관, 효창공원도 이 시기에 가 보실 만합니다. 효창공원에는 백범의 묘가 있고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세 분의 묘도 함께 있습니다.
기념관은 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앞역에서 가깝습니다. 관람료는 없습니다.
그가 남긴 문장을 다시 읽으며
「나의 소원」에는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썼어요.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준다고 이어집니다.
총을 들고 싸운 사람이 마지막에 문화를 말했습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평생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가르치려 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됩니다.
유네스코가 그를 기념하기로 한 것도 이 대목과 닿아 있을 겁니다. 유네스코는 교육과 과학과 문화를 다루는 기구니까요. 무장투쟁가로서가 아니라 평화를 말한 사람으로 본 것이지요.
정부가 내건 공식 문구가 나의 소원, 평화의 문화인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출처
· 생몰과 「나의 소원」, 임시정부 활동: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구」
· 유네스코 기념해 지정과 찬성국, 정부 공식 문구, 창경궁 행사: 경향신문 2026-08-27 및 서울시 2026년 9월 행사계획
· 현상금 60만 원과 피신 도시: 백범김구기념관 자료 및 언론 보도
· 치하포 사건, 인천 감옥 수감, 임시정부 직책 연표, 한인애국단, 1948년 남북협상, 『백범일지』 집필 시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및 백범김구기념관 자료
확인하지 못한 것 — 고종이 전화로 사형 집행을 중지시켰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으나 자료마다 서술이 다르고 1차 기록으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임시정부에서 문지기를 자청했다는 이야기는 『백범일지』에 근거하나 본인 회고입니다. 1948년 남북협상 전에 남긴 글의 문구는 취지를 옮긴 것이며 원문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 아닙니다. 효창공원과 기념관의 관람 조건은 바뀔 수 있으니 방문 전 확인하세요. 현상금 60만 원을 지금 화폐로 환산한 값은 당시 노동자 월급 30원을 기준으로 제가 계산한 것입니다. 물가 구조가 달라 정확한 비교는 아닙니다. 자싱 피신 시기 주아이바오와 관련한 일화는 평전에 나오지만 1차 기록으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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