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현대사7 "얘들아, 영웅이 콘서트 예매해라!" : '액티브 시니어'가 열어젖힌 찬란한 K-문화 콘서트 예매를 자녀에게 부탁하는 부모가 늘었습니다. 표를 못 구하면 서운해하고, 구하면 자랑을 합니다.불과 십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었습니다. 그 사이에 무엇이 달라졌는지, 숫자로 보겠습니다.2024년 12월, 우리나라가 넘어선 선먼저 인구 이야기부터입니다.2024년 12월 23일, 우리나라 주민등록 인구 중 65세 이상이 1,024만 4,550명, 전체의 20.00퍼센트가 되었습니다.유엔 기준으로 65세 이상이 이십 퍼센트를 넘으면 초고령사회입니다. 그날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에 들어갔습니다.시기65세 이상 비율2019년 5월15.06%2021년 10월17.02%2022년 12월18.02%2024년 1월19.05%2024년 12월20.00%65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가 1천만 명을 넘은 것은.. 2026. 6. 3. 주판에서 AI까지, 아날로그 세대의 끊임없는 '초고속 정보화' 적응기 얼마 전 명절에 고향 집을 찾았을 때, 안방에서 들려오는 기이한 목소리에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스마트폰을 향해 *"지피티야, 오늘 노인복지관 가는 버스 시간 좀 알려줘"*라며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문득 어머니의 서랍 깊숙이 보관되어 있던, 젊은 시절 경리 부서에서 쓰시던 낡은 나무 주판이 떠올랐습니다. 손가락으로 알을 튕기며 숫자를 세던 청춘이 어느새 인공지능(AI)과 대화를 나누는 황혼이 된 것입니다.오늘날 우리는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확인하고, 출근길 버스 정류장에서 앱으로 도착 시간을 체크하며, 카페에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키오스크로 주문을 합니다. 업무를 할 때는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기도 하죠. 하지만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의 직장 .. 2026. 6. 2. 2002 월드컵과 뜨거운 거리 응원: 시니어 세대가 기억하는 '붉은 광장'의 기적 평소 유교적인 가치관으로 무장하시고 눈빛 한 번으로 오남매를 벌벌 떨게 만들던 엄격했던 저희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생전 처음 보는 젊은이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치며 아이처럼 껑충껑충 뛰시던 모습을 저는 아직도 선명히 기억합니다. 2002년의 여름은 그렇게 완고하던 아버지의 벽을 허물고, 온 나라를 하나의 축제로 묶어준 마법 같은 시간이었습니다.2002년 여름, 대한민국의 온 거리는 거대한 붉은 물결로 가득 찼습니다.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4강 신화'의 기적 뒤에는, 전국 방방곡곡의 광장과 거리를 가득 메운 수백만 명의 '붉은 악마'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이 시기는 당시 사회의 중추이자 지금은 시니어 세대가 된 이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2026. 6. 1. 한강의 기적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1988 서울 올림픽이 바꾼 대한민국의 위상 저희 집 거실 한 켠에는 지금도 빛바랜 '호돌이' 인형 하나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명절이나 가족 모임 때 이 인형을 보면 부모님께서는 약속이라도 한 듯 1988년 가을의 이야기를 꺼내시곤 하죠. 온 동네가 떠나가라 환호했던 그해 9월,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아 눈물을 흘렸던 우리 부모님들의 청춘.1950년대 한국전쟁의 포화가 마른 직후, 전 세계가 바라본 대한민국은 폐허 그 자체였습니다. 원조 없이는 하루도 버티기 힘들었던 나라, 희망이라는 단어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던 이 땅에서 그로부터 불과 30여 년 만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 공식 개최였습니다.당시 서울 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축제 그 이상이었습니다.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한강의 기.. 2026. 5. 30. 1980년대, 넥타이가 거리를 뒤덮던 그 뜨거웠던 날들 1987년 6월, 명동과 종로의 빌딩에서 양복 입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대학생 시위인 줄 알았던 것이 그 순간 성격이 달라졌습니다. 넥타이 부대라는 말이 그때 생겼습니다.그해 1월, 한 대학생이 죽었습니다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다가 숨졌습니다.당국은 처음에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취지로 발표했습니다. 물고문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해명은 무너졌습니다.사람들이 분노한 것은 죽음 자체만이 아니었습니다. 국가가 시민을 죽여 놓고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이 사건이 그해 6월까지 이어지는 흐름의 출발점이 됐습니다.6월 9일, 또 한 명이 쓰러졌습니다1987년 6월 9일, 연세대에서 열린 집회 도중 최루탄에 맞아 이한열이 쓰러졌습니다.동료가 그를 부축.. 2026. 5. 29. 3편: 잿더미 위에서 핀 '새마을운동'의 꽃 1970년 겨울, 전국 3만 3천여 개 마을에 시멘트 335부대씩이 무상으로 내려갔습니다.돈이 아니라 시멘트였습니다. 이 방식이 새마을운동의 성격을 잘 보여 줍니다.어떻게 시작됐나1970년 4월 22일 전국 지방장관회의에서 새마을 가꾸기가 처음 언급됩니다.그해 10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농한기를 이용해 시멘트가 배분됐습니다.시기내용1970년 4월전국 지방장관회의에서 새마을 가꾸기 제시1970년 10월~1971년 6월전국 3만 3,267개 마을에 시멘트 335부대씩 무상 지원이후성과가 좋은 1만 6,600개 마을에 시멘트 500포와 철근 1톤 추가 지급이 2차 배분이 핵심입니다.처음에는 모든 마을에 똑같이 줬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는 잘한 마을에만 줬습니다.마을끼리 경쟁이 붙었습니다. 옆 마을은 받는데 .. 2026. 5. 27.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