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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이야기

늦더위 지나 환절기, 부모님 세대의 여름 나던 지혜

by 인생의 쉼표 2026. 8. 17.

부채 하나로 여름을 났습니다. 마당에 물을 뿌리고, 등목을 하고, 삼베 홑이불을 덮고 잤습니다. 에어컨은 물론이고 선풍기도 흔치 않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요즘 여름을 겪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때는 정말 견딜 만했던 걸까요, 아니면 우리가 잘 견뎠던 걸까요. 이번에는 기억과 기록을 나란히 놓고 확인해 봤습니다. 답은 둘 다였습니다.

그때 여름은 실제로 덜 더웠습니다

먼저 이것부터 확인하고 가겠습니다. 기상청이 백십삼 년치 관측 자료를 분석한 보고서에 답이 있습니다.

연대열대야 일수폭염 일수
1950년대7.9일8.1일
1960년대11.1일8.2일
1970년대9.3일7.8일
1980년대8.9일7.9일
1990년대12.8일10.1일
2010년대19.7일13.3일
2020년대28.0일16.9일

인천, 목포, 부산, 서울, 대구, 강릉 여섯 곳의 평균입니다.

부모님 세대가 한창 살림을 하시던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열대야는 한 해에 아흐레 안팎이었습니다. 지금은 스물여덟 일입니다. 세 배가 넘습니다. 서울만 보면 더 심합니다. 1970년대 서울의 열대야는 연 5.0일이었는데 2020년대는 29.5일입니다.

다만 정직하게 덧붙일 것이 있습니다. 폭염 일수는 계속 늘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1940년대가 12.2일로 1970년대나 1980년대보다 높았습니다. 등락을 거듭하다 2010년대부터 급격히 오른 모양입니다.

여름 자체가 길어지기도 했습니다. 체감 계절로 따진 여름 길이가 1912~1940년 98일에서 최근 30년 123일로 스물닷새 늘었습니다. 최근 십 년만 보면 130일입니다. 예전에 가장 긴 계절은 겨울이었는데 지금은 여름입니다.

선풍기가 사치품이던 시절

그럼 그때는 무엇으로 견뎠을까요. 우선 없었던 것부터 봐야 합니다.

국산 선풍기 1호는 1960년 금성사가 만든 D-301입니다. 텔레비전보다 육 년이나 빨랐습니다. 그런데 이 선풍기는 1963년에 단종됩니다. 이유가 뜻밖입니다. 전력 소비를 늘리는 주범으로 지목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라에 전기가 모자라서 선풍기를 못 만들게 한 시절이 있었던 겁니다.

냉장고는 더했습니다. 1965년에 냉장고 보급률은 일 퍼센트도 되지 않았습니다. 1968년 기준 전국의 냉장고가 오만 대쯤으로 추산되었으니 육백 가구에 한 대꼴이었습니다. 1965년에 나온 국산 첫 냉장고 값이 팔만 육백 원이었는데, 그때 대졸 초임이 만 천 원이었습니다. 일곱 달치 월급입니다.

가전보급 상황
냉장고1965년 1퍼센트 미만 → 1986년 95퍼센트
에어컨1993년 6퍼센트 → 1998년 24퍼센트 → 2018년 87퍼센트
선풍기1960년 국산 1호, 1963년 단종(전력난)

에어컨은 1993년에도 백 가구에 여섯 가구뿐이었습니다. 1998년에 스물네 가구, 2018년에야 여든일곱 가구가 됩니다. 2016년 조사에서 육십 대 이상 가구의 에어컨 보유율은 69퍼센트로 다른 연령대보다 낮았습니다.

수돗물도 귀했습니다. 상수도 보급률이 1960년 16.9퍼센트, 1970년 33.2퍼센트, 1980년에도 54.6퍼센트였습니다. 1980년에 겨우 절반을 넘겼습니다. 등목을 하고 우물물을 길어 쓰던 것은 낭만이 아니라 사정이었던 셈입니다.

부채 하나에 담긴 여덟 가지 덕

없는 대로 사람들은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 방법들이 꽤 정교합니다.

부채부터 보겠습니다. 부채는 크게 둥근 방구부채와 접는 접부채로 나뉩니다. 태극선이 앞의 것, 합죽선이 뒤의 것입니다. 종류만 여든 가지가 넘었습니다.

합죽선이라는 이름은 대나무 살의 껍질만 남기고 깎아 부레풀로 맞붙이는 기법에서 왔습니다. 부채 한 자루를 만드는 데 석 달 이상 걸렸고 공정마다 장인이 나뉘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부채 장인을 선자장이라 하여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 가장 재미있게 본 것은 팔덕선입니다. 부들 줄기로 엮은 둥근 부채인데 주로 농부들이 썼습니다. 이름이 팔덕선인 이유는 여덟 가지 덕이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 바람이 맑은 덕
  • 습기를 없애는 덕
  • 깔고 자는 덕
  • 값이 싼 덕
  • 짜기 쉬운 덕
  • 비를 피하는 덕
  • 햇볕을 가리는 덕
  • 독을 덮는 덕

부채 하나로 바람을 내고, 깔고 자고, 비를 피하고, 장독을 덮었습니다. 물건 하나를 여덟 가지로 쓴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다용도 살림살이의 극치인데, 그렇게 쓸 수밖에 없던 형편이기도 했겠지요.

부채가 왜 사라졌는지도 사전에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선풍기와 에어컨이 보급되면서 가정에서 부채의 수요가 점점 줄어가고 있다는 문장입니다.

죽부인과 등등거리, 몸에 닿지 않게 하는 지혜

죽부인 이야기도 꼭 하고 싶습니다.

죽부인은 길이가 넉 자 반쯤, 지름이 한 아름쯤 되게 만듭니다. 구멍이 나도록 성글게 짜서 원통으로 만들고, 마구리는 접어 궁글려 모나지 않게 합니다. 여기에 두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는 콩댐이나 옻칠 같은 가공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름철 땀에 씻기거나 묻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하나는 끈이나 못을 전혀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품에 안고 자는 물건이니 찔리는 데가 있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삼베 홑이불을 씌워 가슴에 안고 한쪽 다리를 걸치고 자면 바람이 스며들어 잠이 잘 왔다고 합니다. 수면제가 없던 시절 병자에게는 치료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백과사전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죽부인은 아들이 아버지의 것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예의이다." 물건 하나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었던 겁니다.

등등거리도 있습니다. 등나무 줄기를 가늘게 하여 드문드문 엮어 만든 소매 없는 옷인데, 모시 적삼 밑에 받쳐 입었습니다. 이유가 명쾌합니다. 옷이 살에 직접 닿지 않게 해서 땀이 배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몸과 옷 사이에 공기층을 만든 셈이니, 지금 기능성 옷감이 하는 일을 등나무로 한 것입니다.

모시는 다른 인피섬유에 비해 길고 강인하며 광택이 있고 물에 강했습니다. 한산모시짜기는 1967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모기장과 소독차

여름밤 하면 모기입니다.

모기장은 1900년대 무렵 우리나라에 들어온 물건입니다. 그 전에는 모기향을 피우거나 모깃불을 놓아 연기로 쫓았습니다. 무명실이나 견사로 망사를 짜서 만들었고 짙은 녹색이나 옥색, 파랑색이 많았습니다. 형태가 직육면체인데 밑바닥은 없었습니다. 윗면 네 귀퉁이에 끈을 달아 방 네 귀에 걸었습니다.

그리고 소독차가 있었습니다. 국가기록원의 기록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저녁나절 하얀 연기를 뿌리고 다니는 차량이 있었다. 찌릿한 소독약 냄새를 풍기는 하얀 연기를 피우며 다닌 이 차는 동네 전체의 소독과 방역을 위한 차량이었다." 그 뒤를 쫓아 뛰어다니던 기억이 있으신 분이 많을 겁니다.

왜 그렇게까지 방역을 했는지는 병 때문이었습니다. 일본뇌염은 1949년에 환자 5,616명 가운데 2,729명이 목숨을 잃는 대유행이 있었고, 1958년에도 환자 약 6,897명에 사망 2,177명이었습니다. 절반 가까이가 죽는 병이었습니다. 1971년 백신이 도입된 뒤에야 확 줄었습니다.

당시 계몽 문구도 남아 있습니다. 집 주변 풀베기, 우물 뚜껑 덮기, 하수구와 변소 소독하기. 콜레라 예방으로는 아이들 목욕 자주 시키기, 비누로 손발 씻기, 물 끓여 먹기, 비위생적인 빙과류 먹지 않기였습니다.

1970년대 이전에는 지금은 금지된 DDT를 뿌리기도 했습니다.

한 가지 더. 일본뇌염 주의보 발령일이 1975년에는 6월 25일이었는데 2021년에는 3월 22일이었습니다. 석 달이 앞당겨졌습니다. 앞서 본 기온 변화가 모기의 달력까지 바꿔 놓은 것입니다.

환절기, 지금 챙기실 것

이제 실용적인 이야기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늦더위가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지는 이 시기가 실은 조심할 때입니다.

질병관리청 설명은 이렇습니다. 찬 공기를 만나면 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말초동맥이 수축하고, 혈압이 오르고 심박수가 빨라집니다. 체온이 낮아지면 혈소판이 활성화되고 혈액 점도가 높아져 혈전이 잘 생깁니다. 심뇌혈관질환 사망자는 12월에서 2월에 가장 많습니다.

여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땀으로 수분이 빠지면 혈액이 끈끈해지고, 에어컨으로 실내외 온도차가 크면 혈관이 갑자기 수축합니다. 그러니 늦더위와 환절기가 겹치는 지금이 양쪽 위험이 함께 있는 때입니다.

냉방병에 대해서도 정리해 두겠습니다. 질병관리청은 냉방병을 질병명이라기보다 냉방 환경과 관련해 나타나는 증상들을 부르는 말이라고 설명합니다. 더운 바깥과 지나치게 차가운 실내를 오가면 체온 조절을 맡은 자율신경계에 부담이 커집니다. 두통과 오한, 피로감, 콧물과 재채기, 소화불량이 주된 증상입니다.

항목권고
실내외 온도차5도 안팎
여름 실내 온도대체로 24~26도에서 쾌적
환기냉방 중에도 2~4시간마다 5분 이상 창문 열기
바람직접 맞지 않기. 얇은 겉옷이나 무릎담요
갈증이 없어도 조금씩 자주

여기서 흔한 오해를 하나 바로잡겠습니다. 인터넷에 도는 "정부 권장 여름 실내온도 이십팔 도"는 공공기관의 에너지 절약 기준이지 가정의 건강 기준이 아닙니다. 건강 기준은 질병관리청이 안내하는 24~26도입니다. 어르신이 폭염에 무리하게 온도를 높이면 오히려 온열질환 위험이 커집니다.

또 하나. "일교차 때문에 감기에 걸린다"는 말은 공식 자료와 맞지 않습니다.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은 바람이나 기온, 습도가 감기 증상을 악화시키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가을에는 감기를 일으키는 리노바이러스가 80퍼센트까지 늘어나기 때문에 환절기에 감기가 흔해지는 것입니다. 추워서가 아니라 바이러스가 늘어서입니다.

예방접종은 챙기실 만합니다. 인플루엔자 백신은 어르신에게 발병 예방 효과는 40퍼센트로 낮지만, 입원을 막는 효과가 50~60퍼센트, 사망을 막는 효과가 약 80퍼센트입니다. 안 걸리게 하는 백신이라기보다 크게 나빠지지 않게 하는 백신입니다. 유행 최소 두 주 전에 맞아야 하므로 10월에서 11월 사이에 맞는 것이 좋습니다.

폐렴구균 백신은 65세 이상이면 한 번만 맞으면 되고 비용 부담이 없으며 연중 아무 때나 가능합니다. 65세 이상에서 폐렴구균 균혈증이 생기면 사망률이 60퍼센트에 이릅니다. 예전에 65세 넘어 맞으신 적이 있다면 다시 맞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여름을 지나온 분들에게

부채질을 하며 여름을 나던 시절은 실제로 지금보다 덜 더웠습니다. 열대야가 한 해에 아흐레였으니까요. 그렇다고 편했던 것도 아닙니다. 냉장고가 없어 음식을 하루도 못 두었고, 수돗물이 절반의 집에만 들어왔고, 모기가 옮기는 병으로 해마다 수천 명이 죽었습니다.

지금은 열대야가 스물여덟 일이고 여름이 넉 달입니다. 대신 에어컨이 있고 수돗물이 있고 백신이 있습니다. 그러니 옛날이 좋았다고도, 지금이 낫다고도 쉽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팔덕선의 여덟 가지 덕을 헤아리고, 죽부인에 못 하나 박지 않고, 등등거리로 옷과 살 사이에 바람길을 낸 그 마음가짐 말입니다. 있는 것으로 어떻게든 살아 낸 그 궁리가 지금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올여름도 다들 무사히 나셨기를 바랍니다. 아침저녁 선선해지면 겉옷 하나 챙겨 나가시고, 10월이 되면 독감 주사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출처 및 참고
· 연대별 열대야·폭염 일수, 서울 수치, 여름 길이 변화: 기상청 「우리나라 113년 기후변화 분석 보고서」(2025년 12월). 인천·목포·부산·서울·대구·강릉 6개 지점 평균이며, 여름 길이는 기상학적 계절이 아니라 체감 계절 기준입니다
· 선풍기 D-301(1960년)과 단종(1963년), 냉장고 보급률(1965년 1퍼센트 미만, 1986년 95퍼센트), 1968년 냉장고 5만 대, 1965년 냉장고 가격과 대졸 초임, 소독차와 방역 계몽 문구, DDT: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생활·보건 분야
· 에어컨 보유율(1993~2018년, 2016년 연령별): 한국갤럽조사연구소
· 상수도 보급률(1960~2015년): 서울하수도과학관 「한국의 상하수도」, 원출처 『한국수도백년사』(2008)
· 부채의 종류와 합죽선 제작, 팔덕선의 여덟 가지 덕, 죽부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부채」·「죽부인」
· 등등거리: 국립민속박물관 웹진 및 국립제주박물관 소장품 해설
· 모시와 한산모시짜기: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 국가유산청
· 모기장: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모기장」
· 일본뇌염 유행 통계와 주의보 발령일 변화: 질병관리청 『주간 건강과 질병』 2022년 15권 18호
· 환절기 심뇌혈관 위험, 냉방병, 감기와 기온의 관계, 인플루엔자·폐렴구균 예방접종: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및 예방접종도우미
확인하지 못한 것 — 선풍기와 에어컨의 연도별 가구 보급률 정부 통계 원표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널리 인용되는 "1979년 선풍기 가구당 1.16대" 같은 수치는 원 출처를 찾지 못해 싣지 않았습니다. 1960~1990년 상수도 보급률은 정부 지표 사이트에 없어 『한국수도백년사』를 인용한 2차 자료를 썼습니다. 얼음과 빙과 소비 통계, 우물이 사라진 시기를 명시한 자료도 찾지 못했습니다. '등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국립민속박물관 사전 모두에 표제어가 없습니다. DDT 사용 금지의 정확한 연도와 법령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2026-2027절기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일정은 아직 발표 전이므로 질병관리청 안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의 건강 정보는 일반적인 안내이며 진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