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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이야기

명절 선물세트의 지존, 스팸은 어떻게 우리 밥상의 주인공이 되었을까

by 인생의 쉼표 2026. 7. 6.

명절에 스팸 세트를 받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이 통조림이 원래 어떤 물건이었는지 아시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전쟁 통에 어쩔 수 없이 먹던 싸구려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 물건이 왜 우리나라에서만 명절 선물의 지존이 되었을까요.

남는 돼지 목살로 만든 통조림

스팸은 1937년 미국 미네소타주의 호멜식품이 만들었습니다. 팔리지 않고 쌓여 있던 돼지 목살 재고를 소진하려고 개발한 제품이었습니다.

이름은 양념 햄(SPiced hAM)을 줄인 말입니다. 회사 임원의 형제였던 뉴욕 배우가 사내 공모에서 제안해 상금 백 달러를 받았다는 것이 회사의 공식 설명입니다.

전쟁이 만든 물건

이 통조림을 세계에 퍼뜨린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상하지 않고, 열지 않아도 오래가고, 그대로 먹을 수 있었으니까요.

항목수치

1940~1945년 해외 공급 1억 3,300만 캔 이상
1941년 이후 해외 선적 주당 최대 1,500만 캔
1944년 회사 통조림 제품의 90퍼센트 이상이 정부용
1945년 초 호멜 전 제품의 65퍼센트를 전선의 미군이 소비

주당 천오백만 캔입니다. 회사가 만드는 것의 아홉 할이 군대로 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병사들은 지겨워했습니다. 아이젠하워가 호멜 창립 기념일에 보낸 편지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자기도 수백만 병사와 함께 스팸을 먹었으며, 총사령관으로서 너무 많이 보낸 죄를 용서한다는 농담이었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스팸이 오랫동안 '전쟁 때 먹던 싸구려'로 여겨진 것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길

우리나라에는 6·25 전쟁 때 들어왔습니다. 주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물자가 주된 공급원이었습니다.

그 시절 미군 부대 주변에서 나온 햄과 소시지에 김치와 두부, 콩나물을 넣고 끓인 것이 부대찌개입니다.

연도내용

1960년 의정부에서 허기숙이 포장마차를 열고 미군부대에서 나온 햄·소시지 활용
1963년 라면 국내 도입 (초기엔 비싸 부대찌개에 안 넣었음)
1968년 '오뎅식당' 상호 등록 →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 형성
1970년대 말 이태원 '바다식당' 개업, '존슨탕' 명칭 사용

존슨탕이라는 별칭은 당시 미국 대통령 린든 존슨의 성에서 왔습니다.

지금은 라면 사리가 당연하지만, 처음에는 라면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1963년에 들어온 라면이 그때는 비싼 물건이었기 때문입니다.

1987년, 국산 스팸이 나왔습니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던 물건이 정식 제품이 된 것은 1980년대입니다.

1986년 제일제당이 호멜과 생산 계약을 맺고, 1987년 5월 국내 첫 출시했습니다. 그해에만 500톤이 팔려 바로 1위가 됐습니다.

그 전까지 국내 캔 제품 시장은 런천미트, 치즈햄, 로스팜, 장조림햄 네 제품이 칠십오 퍼센트 넘게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연도스팸 연매출

1987년 70억 원
1997년 520억 원
2006년 1,000억 원 돌파
2016년 3,000억 원
2018년 4,000억 원
2020년 4,500억 원 (200그램 환산 12억 개)

누적으로 보면 2018년 말까지 매출 4조 원을 넘었고, 2022년 말까지 누적 판매 19억 개(200그램 환산)입니다. 국민 한 사람당 약 마흔 개꼴입니다.

미국 다음이 한국입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제조사인 호멜식품이 공식 자료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한국은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스팸 소비국입니다. 우리 인구가 미국의 육 분의 일도 안 되는데 말입니다.

다른 나라 사정도 보겠습니다.

지역소비

하와이 연간 약 700만 캔 — 미국 내 최대
1인당 연간 16캔 — 1인당 세계 1위
한국 국가 전체로는 미국 다음 2위

하와이에서는 봄마다 와이키키에서 스팸 축제가 열립니다. 하와이 최대 규모의 공공 행사이고 첫날 오후에만 사만 명이 모입니다.

왜 우리에게만 선물이 됐나

이제 핵심 질문입니다.

스팸 연매출의 60퍼센트가 명절 선물세트에서 나옵니다. 1987년 출시 이후 지금까지 그 비율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차이는 어떻게 처음 만났느냐에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전쟁 통에 배급받아 억지로 먹던 물건이었습니다. 가난과 결핍의 기억이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미군 부대에서만 나오는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아무나 구할 수 없었고, 구하면 잘게 썰어 아껴 먹었습니다. 그 기억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1987년에 정식 제품이 나오자, 이것은 궁핍의 상징이 아니라 귀한 것을 주고받는 선물이 되었습니다.

같은 통조림인데 시작이 달랐던 겁니다.

부대찌개가 세계로

부대찌개도 갈 길을 갔습니다.

의정부에는 옛 양주군청사 옆으로 부대찌개 거리가 생겼고, 의정부시가 관광 테마골목으로 운영합니다. 2025년 11월에 제18회 부대찌개 축제가 열렸습니다.

지역마다 방식도 갈렸습니다. 의정부식은 맑은 육수를 쓰고, 송탄식은 햄과 소시지를 훨씬 많이 넣고 치즈와 콩까지 더해 걸쭉합니다.

2020년 6월에는 영국 BBC가 부대찌개를 다뤘습니다. 한국의 생존 찌개가 세계적인 요리로 진화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시절을 지나온 분들께

지금 예순, 일흔이 되신 분들 가운데는 미군 부대에서 나온 통조림을 처음 보시던 순간을 기억하는 분이 계실 겁니다. 그때 그것은 요즘 말로 하면 아주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남는 돼지 목살로 만든 전쟁 통조림이, 미군 부대 담장을 넘어와 부대찌개가 되고, 1987년에 국산이 되고, 지금은 명절마다 서로 주고받는 물건이 되었습니다. 팔십팔 년 동안의 일입니다.

올 추석에도 그 세트를 받으시게 될 텐데, 뜯으면서 한 번쯤 이 이야기를 떠올려 보셔도 좋겠습니다.


출처 및 참고
· 스팸 출시(1937년)와 이름 유래, 제2차 세계대전 군납 규모(1940~1945년 1억 3,300만 캔, 주당 1,500만 캔, 1944년 90퍼센트, 1945년 65퍼센트), 아이젠하워 편지, 하와이 700만 캔, 괌 1인당 16캔, 스팸잼 축제, 한국이 세계 2위 소비국: 호멜식품 공식 자료
· 국내 유입 경로, 1986년 라이선스 계약과 1987년 5월 출시, 연매출 추이, 누적 매출 4조 원과 누적 판매 19억 개, 명절 선물세트 비중 60퍼센트: CJ제일제당 공식 자료
· 부대찌개의 기원(1960년 의정부, 1968년 오뎅식당), 존슨탕 명칭, 라면 도입(1963년)과 초기에 넣지 않은 사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부대찌개」
·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와 축제, 의정부식·송탄식 구분: 의정부시 및 경기도 공식 자료
· 2020년 6월 BBC 보도: 언론 인용
확인하지 못한 것 / 엇갈리는 것 — 널리 인용되는 "제2차 세계대전 중 1억 5,000만 파운드 공급"은 호멜 공식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아 공식 수치인 1억 3,300만 캔만 실었습니다. 명절 선물세트 시장에서 통조림 햄이 차지하는 금액 비중은 정부·유관기관 공식 통계를 찾지 못해 쓰지 않았습니다. 2021년 이후 연매출과 누적 5조 원 수치도 기업 공식 자료로 확인되지 않아 싣지 않았습니다. 캔햄 시장 점유율은 자료마다 50퍼센트와 60퍼센트로 갈려 본문에 넣지 않았습니다. 필리핀 등 다른 나라의 소비 규모는 정량 자료를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