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역사3 2년 17일이 걸린 회의 —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시작된 정전회담 회의 한 번이 이 년 십칠 일 걸렸습니다.1951년 7월 10일에 시작해 1953년 7월 27일에 끝났습니다. 그런데 그 이 년 동안 전쟁이 멈춰 있던 것이 아닙니다. 회담장에서는 말싸움이, 전선에서는 고지 쟁탈전이 동시에 벌어졌습니다.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짚어 보겠습니다.회담은 어떻게 시작됐나먼저 시작 경위입니다.1951년 6월 23일, 유엔 주재 소련 대표 말리크가 라디오 방송에서 휴전을 제의했습니다. 미국이 이를 받아들였고, 7월 8일 개성에서 연락장교회의로 절차를 정한 뒤 7월 10일 개성 내봉장에서 본회의가 열렸습니다.첫날은 상견례였고, 실제 회담은 7월 11일부터였습니다.구분내용개시1951년 7월 10일, 개성 내봉장대표양측 각 5명유엔군 수석대표조이 해군 .. 2026. 7. 10. 1962년 7월 10일, 하늘에 띄운 은빛 공 하나가 세상을 하나로 묶다 - 텔스타 1호 이야기 바다 건너 소식을 실시간으로 본다는 것. 지금은 당연하지만, 예순여섯 해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1962년 7월 10일, 수박만 한 은빛 공 하나가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대서양 건너로 텔레비전 화면이 처음 건너갔습니다.그전에는 어떻게 연락했나먼저 그 전에는 어땠는지 봐야 이 일의 크기가 보입니다.대륙 사이를 잇는 유일한 수단은 해저 케이블이었습니다. 최초의 대서양 횡단 전화 케이블 TAT-1이 1956년 9월 25일 개통했는데, 규모가 이랬습니다.항목내용개통1956년 9월 25일구간스코틀랜드 ↔ 캐나다 뉴펀들랜드동시 통화 회선36회선 (곧 48회선으로 증설)개통 첫날런던-미국 588통, 런던-캐나다 119통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동시에 서른여섯 통밖에 통화가 안 됐습니다. 유럽 전체와 .. 2026. 7. 10. 낡은 흑백 사진 한 장이 건넨 질문: 우리는 누구의 오늘을 살고 있나요?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는 대략 1만 8천 명 선입니다.그런데 독립운동에 관여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모릅니다. 기록이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이름이 남는다는 것독립운동가 하면 몇 분의 이름이 먼저 떠오릅니다. 안중근, 윤봉길, 김구 같은 분들이지요.교과서에 실린 이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지면이 한정돼 있으니까요.그런데 만세를 부른 사람, 군자금을 댄 사람, 숨겨 준 사람, 등사기를 돌린 사람은 훨씬 많았습니다.이들 대부분은 이름이 남지 않았습니다. 남길 수가 없었어요. 기록이 곧 증거였고, 증거는 곧 체포였으니까요.왜 기록이 없나비밀조직은 명부를 만들지 않습니다. 만들면 한 사람이 잡혔을 때 전부 잡힙니다.연락도 구두로 했습니다. 종이에 적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지요.일제가 남긴 판결문.. 2026. 5. 24.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