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역사2 사막을 달군 아버지들의 뜨거운 눈물 1975년에 6천 명이던 중동 파견 근로자가 1978년에는 10만 명에 육박했습니다.삼 년 만에 열여섯 배가 넘게 늘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기름값이 오르면서 시작됐습니다1973년 오일쇼크로 기름값이 폭등합니다. 한국 같은 나라에는 재앙이었습니다.그런데 산유국에는 반대였습니다. 돈이 넘쳐 났습니다.그 돈으로 도로를 깔고 항만을 짓고 도시를 세우기 시작합니다. 공사를 해 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1973년 삼환기업이 사우디아라비아 고속도로 공사를 따낸 것이 본격적인 시작으로 꼽힙니다.기름값 때문에 죽을 뻔한 나라가 그 기름값 덕에 외화를 벌게 된 셈입니다.숫자로 보면항목내용파견 근로자1975년 약 6천 명 → 1978년 10만 명 육박, 한때 20만 명누적 인원1985년까지 약 100만 명해외 건.. 2026. 5. 28. 3편: 잿더미 위에서 핀 '새마을운동'의 꽃 1970년 겨울, 전국 3만 3천여 개 마을에 시멘트 335부대씩이 무상으로 내려갔습니다.돈이 아니라 시멘트였습니다. 이 방식이 새마을운동의 성격을 잘 보여 줍니다.어떻게 시작됐나1970년 4월 22일 전국 지방장관회의에서 새마을 가꾸기가 처음 언급됩니다.그해 10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농한기를 이용해 시멘트가 배분됐습니다.시기내용1970년 4월전국 지방장관회의에서 새마을 가꾸기 제시1970년 10월~1971년 6월전국 3만 3,267개 마을에 시멘트 335부대씩 무상 지원이후성과가 좋은 1만 6,600개 마을에 시멘트 500포와 철근 1톤 추가 지급이 2차 배분이 핵심입니다.처음에는 모든 마을에 똑같이 줬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는 잘한 마을에만 줬습니다.마을끼리 경쟁이 붙었습니다. 옆 마을은 받는데 .. 2026. 5. 27.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