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간호사2 사막을 달군 아버지들의 뜨거운 눈물 1975년에 6천 명이던 중동 파견 근로자가 1978년에는 10만 명에 육박했습니다.삼 년 만에 열여섯 배가 넘게 늘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기름값이 오르면서 시작됐습니다1973년 오일쇼크로 기름값이 폭등합니다. 한국 같은 나라에는 재앙이었습니다.그런데 산유국에는 반대였습니다. 돈이 넘쳐 났습니다.그 돈으로 도로를 깔고 항만을 짓고 도시를 세우기 시작합니다. 공사를 해 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1973년 삼환기업이 사우디아라비아 고속도로 공사를 따낸 것이 본격적인 시작으로 꼽힙니다.기름값 때문에 죽을 뻔한 나라가 그 기름값 덕에 외화를 벌게 된 셈입니다.숫자로 보면항목내용파견 근로자1975년 약 6천 명 → 1978년 10만 명 육박, 한때 20만 명누적 인원1985년까지 약 100만 명해외 건.. 2026. 5. 28. 2편: 한강의 기적, 맨손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청춘들의 기록 1963년, 서독에 보낼 광부 500명을 뽑는다는 공고가 났습니다.지원자가 4만 6천 명 몰렸습니다. 그 시절 대한민국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이 숫자 하나로 짐작이 됩니다.독일로 간 사람들구분기간인원광부1963~1977년7,936명간호요원1960~1976년11,057명광부보다 간호요원이 더 많았습니다. 파독이라고 하면 광부부터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그렇습니다.1963년 한독 근로자 채용 협정에 따라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500명 뽑는 데 4만 6천 명이 왔다는 것은 경쟁률이 90 대 1을 넘었다는 뜻입니다. 대졸자도 지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그들이 보낸 돈이분들이 고국으로 부친 송금액은 1965년부터 1975년까지 약 1억 15만 달러로 집계됩니다.1965년부터 1967년 사이 이 송금액은 총수출액의.. 2026. 5. 26.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