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쇼크2 모래바람과 바꾼 기적, 70년대 중동 건설 붐과 '지프차' 정신의 비밀 얼마 전 저희 오남매가 오랜만에 본가에 모여 대청소를 하던 중, 안방 장롱 깊숙한 서랍에서 빛바랜 물건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겉면에는 아랍어가 어렴풋이 적혀 있고,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낡은 보습함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물건을 보시더니 아련한 눈빛으로 "이게 바로 내 청춘이 저 먼 사우디아라비아 사막에 묻혀있을 때 가져온 유일한 기념품이란다"라며 깊은 회상에 잠기셨습니다. 지금의 2030 세대에게 '중동'이라고 하면 화려한 두바이나 카타르 월드컵을 떠올리겠지만, 저희 아버지 세대인 시니어 층에게 중동은 섭씨 50도가 넘는 모래바람 속에서 목숨을 걸고 가족과 나라를 살려낸 치열한 전쟁터였습니다. 1970년대, 대한민국 경제의 명운을 바꾸어 놓았던 '중동 건설 붐'과 그 시절 우리 아버님들을 사막으로 달리.. 2026. 6. 21. 사막을 달군 아버지들의 뜨거운 눈물 1975년에 6천 명이던 중동 파견 근로자가 1978년에는 10만 명에 육박했습니다.삼 년 만에 열여섯 배가 넘게 늘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기름값이 오르면서 시작됐습니다1973년 오일쇼크로 기름값이 폭등합니다. 한국 같은 나라에는 재앙이었습니다.그런데 산유국에는 반대였습니다. 돈이 넘쳐 났습니다.그 돈으로 도로를 깔고 항만을 짓고 도시를 세우기 시작합니다. 공사를 해 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1973년 삼환기업이 사우디아라비아 고속도로 공사를 따낸 것이 본격적인 시작으로 꼽힙니다.기름값 때문에 죽을 뻔한 나라가 그 기름값 덕에 외화를 벌게 된 셈입니다.숫자로 보면항목내용파견 근로자1975년 약 6천 명 → 1978년 10만 명 육박, 한때 20만 명누적 인원1985년까지 약 100만 명해외 건.. 2026. 5. 28. 이전 1 다음